국내영화 <연평해전> 후기,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해 알아보자


군인들과-월드컵-응원단-사진
연평해전

2015년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은 최순조 작가의 원작 소설 '서해 해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2002년에 있었던 2차 연평해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관객 60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오늘은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과 함께 연평해전 외에 북한의 대남 도발에는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목숨 바친 젊은이들의 희생

청각장애인 어머니를 둔 효자 박동혁은 의무병으로 해군에 입대하게 된다. 고속정 357호로 전임 가게 된 박동혁은 그곳에서 해군 출신 아버지를 둔 깐깐한 상관 윤영하 대위와 친형 같은 한상국 하사를 만나 근무하게 된다. 그 시기, 대한민국은 월드컵 개최 열기로 뜨거웠다. 월드컵에 대한 기대와 함께 평화로운 날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북한 어선 3척이 NLL을 넘어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군의 경고에도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던 그때, 북한의 함포가 기습 공격을 시작한다. 순식간에 바다는 아수라장이 되고 남한의 해군과 북한의 해군 간에 해상 전투가 시작된다. 30분 넘게 교전이 지속되던 중 아군의 지원으로 남한이 승기를 잡게 되고 북한군은 큰 피해를 입고 도망친다. 이 전투로 우리는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2002년 월드컵보다 더 감동스럽고 뜨거웠던 그날의 기억.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그들의 희생. 영화 연평해전.

대표적인 북한의 대남 도발

1968년 1.21일 사태 - 1968년 1월 21일 북한 정찰국 소속 공작원 124부대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다. 31명 중 29명이 사살되었으며 1명은 북으로 도망쳤고 1명은 투항했다. 투항한 사람인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이 사건을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비군이 창설되었으며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만들어졌다.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 1968년 11월 2일 북한 유격대가 남한의 울진과 삼척으로 침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들은 10월 30일부터 3일간 네 차례에 걸쳐 상륙하는 방법을 이용했으며 이들 역시 124부대 공작원들이었다. 초반 경계를 서던 군인들의 근무태만과 미흡한 대처로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으나 이후 본격적인 간첩 소탕 작전을 통해 적군 120명을 모두 소탕하였다. 일련의 사건들도 인해 대한민국 내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반발에 거세게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 이 사건으로 인해 지금의 판문점 콘크리트 경계석이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경계 없이 남한과 북한군의 초소가 섞여 있었는데 초소의 시야를 방해하는 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도중 갑자기 북한군이 공격을 가한 것이 시작이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당시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2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힌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던 중국과 소련조차도 북한을 냉대했다. 이러한 사태에 격분한 미국이 한국과 합작해 전시체제 돌입하여 작전을 수행할 계획을 세운다. 그 시작점은 문제가 되었던 나무를 벌목하는 것. 이번에도 북한이 공격해온다면 바로 전쟁이 일어날 상황이었지만 북한이 침묵하자 다행히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1983년 아웅산 폭탄 사건 - 1983년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던 전두환에게 공격을 시도한 북한의 폭탄 투척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버마 연방 공화국을 방문하여 아웅산수지의 묘소를 참배하는 일정이 예정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폭탄 투척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무사했다. 이전에 계획되어 있던 일정이 지연되어 제 시각에 묘소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그러나 미국의 중재와 전두환의 정권 유지를 위한 침묵으로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 이라크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보잉 707 여객기가 실종된 사건이다. 조사 결과 정부는 북한에 의한 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범인으로 지목된 김승일과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으로 밝혀졌다. 김승일은 체포 전 자결했으나 김현희는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최악의 참사였으나 정부의 대응이 부실하여 비난을 많이 받았던 사건이다. 1999년 1차 연평해전 -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일어난 남북한 함정 간의 해전이다. 남한 해군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나 북한 해군은 배 2척이 침몰당하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고 퇴각하였다.

해군의 제작 지원

영화 연평해전은 2002년 연평도에서 있었던 대한민국 해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대한민국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특별한 점은 해군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연평해전으로 인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희생당한 동료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지원했다는 점이다. 촬영 장소는 물론 영화에 나오는 고속정도 해군이 직접 지원해줬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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