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상륙작전 실화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줄거리 및 후기


전장에서-전투중인-군인들의-모습
장사리 포스터

오늘은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펼쳐진 또 다른 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을 다룬 영화 '장사리, 잊힌 영웅들'을 리뷰해보겠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더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와 함께 실제 장사상륙작전은 어떤 작전이었는지 그리고 제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까지 알아보겠습니다.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 이야기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한 후, 남한은 한 달 여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위기에 빠진다.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교란작전을 지시한다. 4개의 교란작전 중 하나인 장사상륙작전을 위해 이명준 대위의 지휘 하에 학도병들과 유격대는 장사리로 간다. 학도병들의 나이는 평균 17세였고 군사훈련은 고작 2주밖에 받지 못한 상황에서 실전에 투입되었다. 실전 경험이 없고 훈련도 부족했던 772명의 학도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상륙 작전을 시도한다. 악천후와 함께 북한군의 공격으로 상륙을 하기도 전에 수많은 학도병들이 희생당한다. 분대장 최성필의 기지로 간신히 배를 육지에 정박시키고 본격적인 상륙을 시작한다. 그러나 북한의 거센 공격 때문에 학도병들은 진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본격적인 미군 전투기의 공중 지원으로 학도병들은 북한군의 본진을 제압하고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이명준 대위는 북한군 포로의 자백을 통해 북한군의 추가 병력이 장사리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통신장비가 고장 나 아군과의 무전이 불가했고 부하 2명을 직접 보내 아군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도록 한다. 이명준 대위는 북한군이 장사리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터널을 폭파시켜 최대한 지연시키도록 작전을 지시한다. 터널을 폭파하기 위해 폭약을 설치하던 중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이 들이닥치게 된다. 큰 위기에 처할뻔했지만 류태석 상사의 희생으로 터널을 폭파하는 데 성공하고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시킨다. 아군 본부에서 학도병들의 탈출을 위해 구조선 투입을 결정한다. 구조선이 장사리에 도착하고 학도병들은 구조선을 타기 위해 해변으로 향한다. 그때 북한군들이 다시 공격을 해오기 시작한다. 분대장 최성필을 필두로 2중대가 최후방에서 엄호를 맡았으나 무차별적인 북한군의 공격에 수많은 학도병들이 희생당한다. 더군다나 북한군의 포격으로 구조선이 침몰될 수 있어 육지에 정박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학도병들은 보트를 타고 구조선으로 가기도 하고 구조선에 못 탄 학도병들은 헤엄을 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한다. 그러나 북한군의 기관총 공격에 바다에서 또다시 많은 학도병들이 희생당한다. 시간이 지체되어 썰물이 올 상황이 되어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구조를 중단하고 결국 철수 결정을 내린다. 장사리 작전에서 살아 돌아온 이명준 대위는 지휘관으로서 아군에 극심한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군검찰에게 재판을 받게 된다. 후에 이명준 대위는 명예를 회복하게 되고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일평생을 바쳤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장사상륙작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게 된 상황에서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작전을 계획한다. 위험요소가 많았던 인천 상륙작전을 안전하게 성공시키기 위해 양동작전으로 장사상륙작전을 펼치게 된다. 서해안에 위치한 인천과 정반대인 동해안 장사리 지역에 병력을 투입시켜 북한군의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작전이었다. 이명흠 대위가 이끄는 제1독립 유격대대는 772명의 학도병으로 구성되었다. 원래는 군인들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군을 속이기 위해 인민군 복장을 하고 작전을 펼쳐야 해서 북한군과 외모가 닮은 남한 학생들이 투입된 것이다. 부대는 3일 간만 교란작전을 펼치고 철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악천후와 함께 태풍이 불었다. 상륙작전을 펼치는 도중 수송선인 문산호가 좌초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본부에서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제1독립 유격대대는 인민군의 보급로 차단 작전에 성공한다.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본부에서 구조선을 보내 철수 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철수과정에서 수많은 학도병들이 희생당하게 된다. 또 북한군의 포격으로 인해 일부 학도병들을 장사리에 남겨둔 채 철수하였고 그들의 생사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장사상륙작전은 전사자 139명, 부상자 92명, 포로 39명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 장사상륙작전의 성공적인 수행 덕분에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하게 되었고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했기에 남한은 전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장사리 후기

이 영화는 흥행에서는 참패한 영화이다. 총 관객수 100만을 겨우 넘기며 손익분기점의 절반도 도달하지 못했다. 일단 영화의 시작에 앞서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인천 상륙작전에 비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기에 영화 초반에 몇 줄의 글로 설명하기엔 부족했다고 생각이 든다. 작품적으로만 본다면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많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하지만 알지 못했던 사건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나는 똑같이 행동할 수 있었을지도 생각해보게 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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