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영화 <고지전> 줄거리 및 해석, 애록(AEROK)고지 의미


전쟁중인-군인들의-모습
고지전

영화 고지전은 한반도가 분단된 원인이 된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고지전을 중심소재로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민족의 아픔을 표현한 영화입니다. 철저한 고증과 현실감, 배우들의 열연으로 수작으로 평가되는 영화 고지전과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인 6.25전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최후의 전투, 고지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남한이 승세를 잡아갈 때 즈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의 양상이 다시 바뀐다. 1951년 1월 4일 1.4 후퇴 이전까지 사망자수는 1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6.25 전쟁의 기록은 1.4 후퇴에서 끝나버린다. 소련이 휴전을 제안했을 때가 1951년 6월이었고 휴전협정이 체결된 때가 1953년 7월 27일이다. 남과 북은 37개월 동안 전쟁을 했는데 그중 25개월이 휴전협상 기간이었다. 휴전협상 시기 이미 전선은 교착 상태였고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25개월 동안 계속해서 교착된 전선에서 하루에도 3~4번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고지전'이 지속되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전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가 300만 명에 이른다. 방첩대 강은표 중위는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발생한 악어중대 기철진 대위의 사망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동부전선으로 향한다. 기철진 대위는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부검 결과 아군의 권총에 의해 사살당한 것으로 밝혀진다. 또 아군의 군사우편을 통해 인민군의 편지가 전달되는 일이 발생하자 상부에서 악어중대 내에 인민군 간첩이 있다 판단하고 강은표 중위를 파견한 것이다. 강은표 중위는 그곳에서 전쟁 중에 실종되어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을 만난다. 겁 많던 학생이었던 김수혁은 2년 사이 중위로 진급해 '악어중대'의 실질적인 리더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강은표가 마주한 정예부대 '악어중대'의 모습은 오합지졸처럼 보였다. 다음 날 애록고지는 인민군의 기습에 점령당하고 악어중대는 다시 애록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 '악어중대'는 새로 부임한 중대장의 무모한 작전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악어중대'의 임시 중대장 신일영 대위와 김수혁 중위의 작전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신임 중대장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신임 중대장이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부하에게 총을 겨눈 순간, 김수혁 중위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신임 중대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러한 상황에 강은표 중위는 할 말을 잃게 되고 친구인 김수혁을 체포하려 한다. 강은표 중위가 동부전선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모든 상황을 알게 되고 부대원들과 힘을 합쳐 전쟁에 나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쟁탈전에 지쳐가던 때,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군과 인민군 모두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협정의 효력이 발생하기까지 12시간이 남았고 상부에서 남은 12시간 동안 고지 점령을 이루어낼 것을 명령한다.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중대장 신일영이 좌절에 빠진 중대원들을 독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고지전에서 이 장면을 가장 인상 깊게 봤다. 신일영 역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을 영화 고지전을 관람하며 알게 됐는데 이 장면에서 배우 이제훈의 연기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분단이 된 원인을 알아보려면 광복이 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한다. 그러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국가를 이끌 정부도 지도자도 없는 혼란의 상태였다. 유망한 지도자들이 우리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재건하려 했으나 위도 38도선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정에 의한 미국의 통치를 받게 되고 북쪽은 소련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이때 미국은 민주주의를 실시 중이었고 소련은 공산주의를 실시 중이어서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남과 북의 갈등이 시작된다. 여러 국가들이 모여 대한민국의 향방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도 수차례 하고 대한민국의 지도자들도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수포로 돌아갔다. 최후의 수단으로 UN의 힘을 빌려 남북 동시 선거를 추진하였으나 북한과 소련의 거부로 무산됐고 결국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단독정부를 수립한다. 뒤이어 북한도 1949년 9월 9일 북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게 되면서 한반도 내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다. 1949년 6월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게 되고 조선의용군이 북한의 군대로 편입되었다. 동시에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3년여간의 긴 전쟁 끝에 휴전 협정을 체결하며 전쟁은 끝나게 되지만 휴전선을 따라 철책이 세워지며 대한민국은 분단국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철저한 고증과 노력으로 완성한 영화

영화 '고지전'은 최초로 고지 전쟁을 표현한 작품이다. 고지 전쟁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서 참전용사나 귀순용사의 도움을 얻기도 했으며 그 당시의 현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철저한 고증이 이루어졌다. 고지 전쟁에 적합한 장소를 찾기 위해 전국 100여 개의 산을 7개월 동안 찾아 헤맨 끝에 경상남도 함양의 '백암산'이라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냈다. 전쟁터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4개월여 동안 수작업으로 제초작업과 돌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영화에 나오는 고지 전쟁 장소는 실제로는 '백마고지'라고 불리는 곳이고 영화에서는 '애록고지'로 나온다. 애록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애록을 영어로 쓰게 되면 'AEROK'이 되는데 이것을 거꾸로 읽으면 'KOREA'가 된다. 또한 영화에 참여한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단역 배우들까지 실제로 군사 훈련을 받고 영화를 촬영했다. 공식적인 훈련기간만 5주였다고 한다. 실제로 사격장에서 사격 훈련도 진행했다고 한다. 또 최대한 전쟁의 현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장치 사용을 자제했다고 한다. 때문에 배우들의 부상 위험이나 촬영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지만 그 덕분에 영화 내에서는 전쟁 상황의 긴박함과 현실감이 잘 표현된 것 같다.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